지난 2016년 영국의 Oxford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脫진실(Post-Truth)’을 선정하면서,
‘脫진실’이 이제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언어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몇 달 뒤 Times에서는
‘진실은 죽었는가? (Is Truth Dead?)’라는
특별판을 발간한데 이어,
또 다른 영어사전 Collins에서는
‘가짜 뉴스(Fake News)’를 ‘올해의 어휘’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는
‘脫진실’의 용어들로 가득해져 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Googling을 해 보면
‘脫진실’에 관련된 페이지만 15억 만 개가 넘게 검색됩니다.
또 어떤 조사에서는 ‘脫진실’이라는 단어 사용 빈도가
매년 350%씩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세상 돌아 가는 걸 보니 우리 사회가
‘脫진실’로 접어 드는 것이 맞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脫진실’이란 무엇입니까?
‘脫진실’의 의미를 사전적 정의 그대로 인용해 보면,
‘여론 형성에 있어,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적 호소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시대는 지금 ‘사실’보다 ‘감정’,
‘객관적 정보’보다 ‘주관적 호소’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껏 인류가 살아 온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사실’보다 ‘감정’이, ‘객관적 정보’보다는 ‘주관적 호소’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지 않았던 때가 언제 있었나 싶어집니다.
또, 지금까지 ‘脫진실’에 관한 수 많은 분석들은
모두 이상하리만치 부정적입니다.
그러면서 이를 우리 시대 ‘도덕적 타락’과 연동시켜
이야기하곤 합니다.
물론, ‘脫진실’의 교묘한 기술들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시대 이전의 세상이
지금보다 더 ‘도적적’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과연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뉴스 미디어가
지금의 SNS 보다 더 ‘진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 과거의 대중들이 현재의 대중들보다 더 주체적이었고,
능동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따라서, 현재의 ‘脫진실’을
단순한 ‘진실의 부재’ 현상으로 진단하고,
이를 우리 시대가 극복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다소 과장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脫진실’을 도덕적 타락으로만 규정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 역시 현명한 접근법은 아닌 듯 합니다.
이에, 감히 저희 생각을 말씀 드려 보면,
‘脫진실’은 단순한 ‘진실의 부재’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실’보다 더 중요한‘무엇’이
강하게 작동하는 현상,
그래서 ‘진실’이 부차적 요인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는 현상으로
저희는 진단합니다.
다시 말해, ‘脫진실’이란 ‘진실’을 대하는
사회 전반적 인식 상태의 변화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이 신념인지, 특권 의식인지, 적개심인지
혹은 자기 이익인지는 저마다, 상황마다 다 다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 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자신의 ‘무엇’에 부합하는 ‘과장’, ‘왜곡’, ‘거짓’들에 관해서는
놀라울만큼의 느슨한 태도와 관용의 인식 상태가
조성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제 ‘脫진실’을 더 이상 ‘일탈’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 그 자체로 바라봐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설득’ 해야 하는 일을
業으로 하고 있는 마케터들에게
현재의 거대한 사회적 변화 – ‘脫진실’은
결코 가벼이 지나칠 사안이 아닙니다.
더구나 ‘설득’의 관점에서 보면 ‘脫진실’은 매우 양면적입니다.
한 편으로는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 자체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마케팅 무용론이 대두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또 그 반대 편을 보면,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진실’ 보다 더 중요한 ‘무엇’을 촉매로 전개하는
커뮤니케이션은 깜짝 놀랄 거대한 변화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말이죠.
그런데, 저희가 조금 안타까운 것은
현재 ‘커뮤니케이션 전략가’라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수 많은 전문가들이 ‘Brexit’나 ‘Trump’의 사례에서 보았던
‘脫진실’의 거대한 장면들을 그저 파렴치한 ‘작태’라거나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 정도로 치부하고,
평가절하 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시죠.
가장 많은 ‘개소리’를 내뱉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가장 교묘한 ‘개소리’가 여론을 반전시키고,
가장 논란이 많은 ‘개소리’들이
시청률과 조회수를 좌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이를 여전히 과거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시대적 극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고 해서
극복이 가능한 일일까요?
우리가 정말 ‘진실’ 따위는
부차적인 것이 되어 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면,
사람들이 정말 ‘진실’ 보다 더 중요한 ‘무엇’에
자신의 인식과 행동을 맞추기 시작했다면,
‘脫진실’은 이제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이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파렴치한 ‘개소리’ 역시
도덕적 관점으로만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이를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으로
바라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저희는 이번 <Minority Report Vol. 009>를 통해
‘脫진실’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개소리’로 치부해 버리는 대신,
오히려 ‘개소리’의 효과에 주목하여 살펴 보고,
몇 가지 새로운 방향성을 제언 드려 보고자 합니다.
모쪼록, 저희의 이번 이야기가 여러분들께서
‘脫진실’의 현상을 이해하시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방향성을 새롭게 설정 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Minority Report Vol. 009
“脫진실 Initiatives”
Date 2024
Book size 15cm X 21cm
Printed on the 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