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꼰대’라는 말이 화두입니다.
지난 5년간 국내 출판 시장에서는 ‘꼰대’를 주제로 다룬 신간이
총 145권이나 쏟아져 나왔습니다.
같은 시기 중앙일간지의 ‘꼰대’ 관련 기사와
Google ‘꼰대’ 키워드 검색량은
각각 3,400%와 1,500%라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현재의 ‘꼰대’ 유행은
그간의 다른 유행들과는 다르게
‘청년 세대’ 보다는 ‘기성세대’가 증폭시킨 측면이
훨씬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제 주변을 둘러봐도,
‘꼰대’를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미디어와 사람들
열에 아홉은 젊은 청춘들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의 ‘꼰대’ 현상이란 결국
기성세대와 주류 사회가
‘꼰대’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벌어진 현상에
다름 아닌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화들짝 놀라게 만든 것이었을까요?
소비자 조사를 통해 단서를 하나 찾았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 기성세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시대 흐름에 뒤처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시대 흐름에 뒤처진다’는 것은 곧
‘주류 사회로부터의 낙오와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동안 ‘새로움’에 대한 일종의 강박 같은 것을 갖고
살아오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진짜 문제는
그들이 ‘새로움’의 표상을 언제나
‘청년 세대’의 인식과 감각에 기반해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행하고 있는 ‘꼰대 자가 진단법’을 살펴보면,
대부분 청년 세대들의 사고/행동 방식과의 괴리 정도를
묻는 항목들에 다르지 않습니다.
즉, 기성세대에게 ‘꼰대’란 청년 세대와의 괴리 정도에 불과하며,
그 괴리의 차이가 바로
‘꼰대’와 ‘꼰대가 아닌 존재’를 판가름해 주는
바로미터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청년 세대’가 여전히
‘새로움’의 주체인가를 따져 보면,
현재의 ‘꼰대’ 의미와 해법은 그리 간단치 않아집니다.
우선, ‘새로움’의 주체로서 ‘청년’이라는 존재가 실재하려면,
그들을 아우르는 동질적인 의식과 정체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 사회를 가만 들여다보면,
과거 ‘생존’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상당 부분 유예해 주며 부여했던
‘청년’이라는 특권적 정체성은 해체되고,
이들 모두는 절박할 정도로 ‘자기 계발’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개별적 존재들로
대체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세대 간 차이’라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울 만큼 대폭 축소되었으며,
이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세대 간 문화적 차이에 기반해 온
‘꼰대’라는 인식 또한 함께 수정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 이번 ‘꼰대’ 연구를 위해
제가 직접 만나본 20대 소비자 대부분은
지난 80/90년대의 그들과는 다르게
기존의 지배문화와 질서에 대하여 결코 적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필사적으로 내면화하고,
그 안으로의 편입을 열망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는 그들이 ‘꼰대’라는 명명 행위를 통해 시비를 거는 대상은
주류 사회와 기성 질서 그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서울 시민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 보니,
‘꼰대질’을 규정하는 세대 간 인식이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세대 간 인식이 달라야 충돌이 발생하는데, 세대 간 인식이 같고,
‘세대 간 충돌’ 못지 않게 ‘세대 내 충돌’이
빈번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꼰대’를 여전히 ‘세대 문제’의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세대 간 갈등’의 봉합 방법을 생각해 보는 정도로
해법을 모색해 보는 것은
조금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대체 오늘날 ‘꼰대’라는 어법은
누가 누구를 향해 내뱉는 말입니까?
세대 간 충돌도 아니고, 기성 사회에 대한전면적인 반발도 아니며,
그렇다고 딱히 선과 악의 대립도 아니라면,
도대체 ‘꼰대’는 누구입니까?
지난 세기의 철학자들은 인간이란 본래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래서 인간의 언어는 우리의 주체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대 철학자들은 그들과 달리
인간의 모든 말과 생각, 행동은
개인의 고유한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꼰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들과 같습니다.
‘꼰대’란 명명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내뱉는 말이기에 앞서,
현재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옳다고 믿으며,
어떤 가치에 따라 행동하게 만드느냐를 이해하는
기호로 살펴봐야지,
이를 개별 ‘꼰대’들의 특수한 인식과 행위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는 것으로는
‘꼰대’를 둘러싼 많은 문제의 진단과 해법 모두
요원해지는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부족하나마 저희가 살펴본 ‘꼰대’라는 언어 속에 담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산물은 무엇이며,
그것이 함의하는 시대적 방향성, 그리고 그에 부합하는 브랜드는
대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펼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Minority Report Vol. 006
“꼰대의 文法”
Date 2019
Book size 15cm X 21cm
Printed on the paper